새 기모노 - 11.08.25.

(닌타마 란타로 패러디 - 쌍닌)
※ 주의
1. 약간의 고어.
2. 성이름을 원작 35권에 등장하는 호테이타케성으로 임의 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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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끝내고 한껏 개인훈련을 마치고 방에 돌아와보니 어두운 방안에 작은 등불 하나 켜놓아져있었다.
"어라, 언제왔어?"
"방금 도착했어"
힐끗 뒤를 돌아본 라이조는 저번에 사부로와 함께 가게에서 고른 여성용 기모노를 벗고있었다.
그 기모노는 먹색과 남색을 섞은 듯한 배경에, 꽃잎이 안쪽으로 은은하게 배경색이 드러나게 수놓아진 흰 꽃들이 소매자락 아래로 흩뿌려져있었다.
마치 밤하늘에 흰 꽃들이 내리는 것 같았다.
비단 자체가 비쌌기에 학생에게 있어 제법 고가의 물건이었지만 임무 수행 때문에 어쩔수 없이 둘이 돈을 모아 산 단 한 벌 뿐인 옷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라이조의 등엔 벽에 쓸린듯한 자국과 먼지가 묻어있었다.
섬세한 옷감은 작은 돌에 잘게 흠이 나거나 찢어졌고 모래빛 먼지는 군데군데 옷 주름대로 먼지에 얼룩져있었다.
"몸싸움이라도 한거야?"
라이조는 흠칫했지만 이내 허리를 틀어 뒤돌아 등의 먼지를 손으로 살살 털었다.
책상 위의 거울은 뒤돌던 순간의 라이조 손끝에 부딧혀 앞으로 고꾸라져버렸다.
"아, 이런.. 미안해 사부로. 내가 옷수선을.."
옷을 생각한 손놀림은 조심스러웠지만 그는 분명 당황해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었어?"
사부로는 그에게 다가와 왼쪽 어깨를 잡아 돌렸다.
"아니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일이 없을래야 없었다.
그는 여장을 한 상태였고, 닌자복이 아니라 기모노였다. 그냥 기모노도 아니고 일반 서민들은 감히 입어보지도 못할 비싼 기모노.
그리고 산적이 들끓는 산이 아니라 성에 완벽한 위장을 하고 들어간것이었다.
고개를 숙인채 도리질하는 라이조를 가만히 보던 사부로가 입을 뗐다.
"고개, 들어봐"
고개를 들라니 그는 눈만 빼꼼 위로 치켜든다. 라이조는 아마 사부로가 자신의 부은 볼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얼굴 좀 보자고"
사부로가 양손으로 라이조의 얼굴을 붙잡아 자신을 향했다.
라이조는 아직 화장을 못 지운 상태였는데, 어설프고 거친 분칠과 조금 번진 연지를 한 라이조 얼굴은 화장을 잘하는 사부로로서는 고쳐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눈에 거슬리는게 하나 더 있었다.
"피"
"피?"
사부로는 엄지에 살짝 침을 묻혀 라이조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았다.
"에, 진짜네"
"니꺼 아냐?"
"아니"
"싸운줄 알았는데"
"싸운게 아니라.."
"아니라?"
사부로의 얼굴이 위로 살짝 기울었다.
"아니, 싸운게 맞아"
"제대로 말해"
"어휴"
라이조의 얼굴이 살짝 아래로 기울었다.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미닫이 문밖의 풀벌레소리가 왜인지 크게 들리는 것 같았고, 둘은 침묵으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았다.
"됐어, 그럼 나중에 내가 개인적으로 성에 잠입할꺼야"
"네 임무가 아니잖아"
"호테이타케성이지?"
"지정한 성과 임무내용은 기밀사항이야"
"뭐, 알고있으니깐 상관없어"
"으....."
물론 호테이타케성이라는 건 사부로가 지정된 성이 저번 실전수업때 갔던 성과 중복되었기에 선생님과 상담하다보니 알게되었다.
화근이라면 선생이 안일하게 저번에 라이조가 갔던 성을 사부로에게 지정했던 것이리라.
"하긴 너도 알아두면 정보가 되겠지.."하고 라이조는 말을 트기 시작했다.
"임무는 화약고 조사이었어. 엔간하면 마주치지 않는게 좋긴 하지만 화약고 조사중에 창고지기와 마주치는 바람에.. 손님으로 온 아버지를 따라 왔다고. 아버지가 성주님과 대화하실 동안 잠시 거닐고 있을 뿐이라고 했어. 근데.."
"근데?"
왜인지 라이조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고 붉어졌다. 화나고 억울한 듯한 얼굴이었지만 조금 고개를 흔들더니 말을이었다.
"주변을 살피더니 날 여잔줄 알고 안으려고 하는거야"
"....."
"벽으로 몰길래 내가 밀치긴 밀쳤는데, 어째 기모노가 움직이기에 힘들어서 다리나 팔을 크게 휘두를 수가 없었어"
그리고 또 잠시간 침묵.
"밀서는 다행히 숨겼지만 그 순간 막 입맞추려고 하길래..."
사부로의 표정은 담담하다 못해 서늘해보였다.
"그 사람 혀를 깨물었지"
라이조는 끝내 고개를 푹 숙였다.
"푸하!"
"?"
사부로의 소리에 억울한 표정으로 라이조가 고개를 번뜩 들었다.
"잘했어"
"여기선 '잘했어'가 아니잖아"
"아냐, '잘했어'가 맞아"
"으휴... 튼, 장난 아니었어. 하마터면 가발도 벗겨질 뻔했어"
"그럼 볼이 부은 이유는"
"뻔하지 뭐, 맞았어. 이 정도로 끝났기에 다행이었지만 내가 남자라는 걸 들켰을때를 생각하면 오싹하다"
"흐음.. 그래에.."
"호테이타케성의 화약고의 창고지기를 조심하라는게 나의 충고야. 에휴"
라이조는 다시 등불쪽으로 몸을 돌려 넘어진 거울을 다시 세웠다. 그리곤 세운 거울을 보더니 잊고있었던 화장을 지우러 가봐야겠다며 방을 나갔다.
사부로 앞엔 라이조가 벗어놓고 간 기모노가 놓여져있었다. 아기 피부같이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고 부드러웠던 옷이 거친 사포에 뭉게서 밀어버린듯 잘은 상처들이 지저분했다.
좀 아쉬웠는지 사부로는 그 위를 손으로 쓸며 혼자 중얼거렸다.
"모처럼 어울렸는데.."
.
.
.
"라이조, 기모노 좀 줘봐"
"아직 수선 못했는데 입어도 괜찮겠어?"
"이 몸이 몸소 수선해주겠다고 나가는거 아냐"
"안 그래도 돼, 오후에 위원회 일만 조금 돕고 바로 나갈참.."
"어차피 지나는 길이라 괜찮아. 그리고 나도 실전수업 때문에 곧 쓸일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빨리 수선해야하거든"
"이런.. 미안해 사부로"
"괜찮아,괜찮아"
"내가 언제 우동 쏠게!"
"엉, 곱빼기로 쏴라"
사부로는 그렇게 유유히 학교 밖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수선집이 아닌 호테이타케성에 도착한 사부로는 당당한 연기와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곧바로 화약고를 향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존재를 부정해야할지 긍정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귀신'같았다. '귀신'에는 틀림 없었지만 아름다웠다.
"저기.."
"너,넌 저번의!!"
화약고 창고지기는 사부로가 입은 기모노를 보고 열을 올렸다.
"저번엔 제 동생이 결례가 참 많았습니다."
"언니쪽인가.."
"해서, 제가..."
하고 사부로는 바로 창고 지기를 껴안았는데 창고지기는 처음엔 놀랐지만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냐는 안일한 사고방식을 택하고 말았다.
현재 시간대엔 순찰도는 병사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창고 지기는 주변을 살폈고 이윽고 화약고의 문이 열렸다.
"여기라면"
"안심할 수 있겠네요"
하고 사부로는 그와 입을 맞춘 채 그를 기둥으로 몰아갔다. 그리곤 부드럽게 허리춤의 칼집이 묶인 끈을 풀고 거친손에 쥐어진 무기를 해제시켰다.
기둥뒤의 그의 손놀림은 바빴다.
'너 같으면'
혀의 놀림이 격해지더니
'동생이 당하면'
그의 혀를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듯했고
'가만히 있겠냐'
끝내는 세게 물어뜯고 말았다.
"으.. 으아아!"
사부로는 곧바로 품에서 더러운 천을 꺼내 창고지기의 입에 구겨 넣었다.
"한 번으로 족했어야지 병신같은 새끼.."
"욱..!욱!"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기둥 뒤로 묶여진 손목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화약고는 어두워 힘들다니깐"
사부로는 전체적인 화약고의 조사를 마쳤다.
"다른 성들도 너 같은 창고지기였으면 좋겠다. 그치?"
어두운 곳에서 낮고 음울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절대 밖으로 세어나갈것 같지 않았다. 밖의 세상은 밝았고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이제 이건 필요없으니깐, 너한테 줄께"
그는 자신이 입고온 기모노를 그에게 앞으로 씌워주었는데 기모노 등쪽의 긁힌 자국이 창고지기의 가슴 앞으로 잘 보였다.
때문에 그에겐 창고지기가 물은 천이 점점 피로 물들어가는 건 보이지 않았다.
"옷이 타지 않도록 조심해"
하고 마지막으로 창고지기 머리위로 수명이 다해가는 작은 휴대용 등화를 올려놓고 사라졌다.
.
.
.
.
"짜잔"
"어? 왠 기모노?"
"수선이 안된다고 해서, 새로 샀어"
"진짜? 미안해, 사부로"
"뭐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여튼, 너도 입어 라이조"
"하.. 하지만 난 너에게.."
"돈 같은건 됬고, 우동 곱빼기나 쏘면 돼"
"미안해서 안돼, 얼ㅁ.."
"라이조, 저번에 고서 열심히 복원했었잖아?"
"응? 응, 했었지"
"근데 사라졌지?"
"어, 경단가게에서 두고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져 버ㄹ.."
"그거 나야ㅋ"
"엑?"
"실은 정보료로 네가 갖고있던 책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었거든, 사방팔방 찾아도 안보이길래"
"나.. 나빴어! 야, 그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야!"
"미안미안, 하지만 얼추 읽고 줘서 나 알고 있으니깐.."
"헌책방에서 겨우겨우 구한 책이었는데"
"아아~ 미안해서 내가 이렇게 기모노 사왔잖아~ 그러니깐 미안해 하지말고 입어줘"
"에휴"
라이조는 자신의 눈치를 보며 기모노를 펼쳐 들은 사부로가 조금은 사부로 답지 않다고 할까, 솔직해보였다.
평소라면 능구렁이 같이 자신의 비밀을 끝까지 밝히지 않고 거짓된 당당함을 지켜올것 같았는데 말이다.
"이거 비싼거 아냐? 옷감이 저번보다 더 고운데?"
"아냐아냐, 싸. 한 번 입어봐"
"너한텐 좀 작지 않겠어?"
"입어보고 샀으니깐 내 걱정은 마"
그렇게 말하는 사부로의 표정은 요즘 한 동안 먹구름이 낀듯한 표정에서 조금 밝아 진듯 했고,
그런 사부로를 보며 라이조는 곧 고서에 대한 일을 잊고 기분이 풀리고 말았다.

1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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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장이 전략이긴 하겠지만 상대가 여자라면 방심을 넘어서 쉽게 넘볼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쓰게됨.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독점욕 강하고 지적으로 악랄한 사부로를 그려보고 싶었다.
'감히 라이조를 건드려?' 하고 라이조 몰래 일 벌이고 돌아와 애교질......ㄱ=
시대상에 맞게 쓴건지도 모르겠는데 '창고 지기'라던가 '기모노'라던가 내가 쓸 수 있는 단어들이 왠지 어설퍼서 아쉽다.
적나라한 나의 어휘력.
역시 글은 힘들다. 그리면 (마음뿐이지만)한 컷으로 좀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을것 같은데 글로 쓰려니
괜히 쉽게 스킵되거나 반대로 어렵고 지져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난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