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고있는거야 - 12.02.04.

"자?"
"..."
"울어?"
"..."
그녀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정신 나간듯 웃다가, 어쩐지 탁자위에 엎어져 조용해진 그를 보고 괜찮은지 묻는다.
"재원아"
"..."
"그러지마~"
"...뭘"
"고백받았으면 기뻐해야지 울긴 왜 울어"
그의 속을 알리 없는 그녀는 취기가 아직 덜 가신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의 그런 태도 때문에 운다"
"에에~"
그녀는 탁자에 엎드린 그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왜?"
그에게 고백을 한 학생은 가은이의 친구였고, 
가은이는 친구에게 그를 소개시켜주고선 그녀에게 사랑의 불꽃을 부채질해 준 당사자다.
"내가 누굴 앞에 두고 말하겠냐, TV나 봐라"
그는 그대로 자기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쓰러져 버렸다.
"지금 너의 기분이 내 친구 기분과 같다, 이놈아~!"
방 밖에서 들려오는 가은이의 목소리.
그는 누워서 가은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딱히 생각해야지 마음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꿈을 꾸는것처럼 비몽사몽한 상태로 그녀를 떠올렸다.

성격도 좋고, 성적도 좋고, 눈치도 빠르고, 운동신경도 좋고.
그런 아이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나도 슬프고 그녀도 슬프게했다.
강한 척하고 늘 밝아보이는 가은이는 술마시다 가끔 딴사람이 될랑 말랑 하는 것처럼,
가은이 입은 본래 성격의 편안한 미소와 함께하면서도, 눈은 살짝 경멸에 찬, 그리고 그걸 못 견딜것 같은 가는 눈을 하곤 했다.
그리곤 공부도 못하고 운동신경도 좋지 않고.. 뭐, 여러가지로 딸리는 나에게 말하곤 하는거다.
"부럽다야, 좋아할 수 있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인거야"
그럴때마다 난 정말 화가 나곤했다.
'가은이는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걸 아는지도 몰라'하고. 일부러 날 놀리려고 이러는 거다 하고.
하지만 그녀는 진심어린 눈빛이었다. 진심 어리게 부러워했고 진심 어리게 슬퍼했다.
그 슬픈 눈빛은 자신에 대한 것인지 나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자책과 동정이 적당히 섞여있었기에.
"나도 있는 힘껏 그래봤으면 좋겠다."
"왜, 너도.." 하고 말할라고 하면 그녀는 그냥 고개를 숙인채 저었다.
그리고 말을 잇진 않았다.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녀는 굳이 내 눈을 보지 않아도 알아아차렸을것이다.
내가 눈치챘다는걸.
그녀는 남자를 좋아하지 못한다는걸.
더불어
그렇다고 여자도 마음껏 좋아하지 못한다는걸.

가은이는 자신을 포기하라는 메시지를 친구를 소개시켜 줌으로써 표현했다.
그 친구는 '그녀'가 소개시켜준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가 혹했을 지도 모를정도로 여러모로 괜찮은 여자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괜찮은 친구를 소개시켜 준 그녀는 그의 집에서 동거중이긴 하지만 말이다.
"기숙사 선정에 떨어져서말이야.."
라는 같잖은 핑계는 과수석인 그녀에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도망 칠 곳은 재원이네 밖에 없었다.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준 친구네나 자꾸 기대려고만 싶어지는 부모님댁이 아니었다.
"그래.."
"..미안"

그녀의 룸메이트를 본적이 있다. 조금 맹해 보이지만 친절한, 얼굴은 평범했고 요리를 잘해서 이것저것 잘해먹는다고 했다.
그외 여러가지 알고있다. 키가 어느정도 되는지 취미는 뭔지, 잠꼬대가 어떤지. 가은이가 말을 많이 해줘서 알기 싫어도 알게됬다.
가은이는 그녀 앞에선 말이 좀 많아진다. 그녀답지 않게 비논리적으로.
룸메이트는 그녀를 오랫동안 본적은 없으니 본래 그런줄 알았겠지만 나는 그녀가 당황한 상태라는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런 당황스런 '일상'을 버티다 못해 지쳐 계약 만기일을 못채우고 내 하숙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때의 모습은 집을 나오고 만 '개'의 표정같았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미안"
그녀가 그의 닫힌 방문에 붙어 사과를 한다.
그는 나가고싶지않아 사과를 무시한체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엎드렸다. 미안하다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싶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그렇게 방문에 기대 잠이 들어버렸다.
그는 조심스레 무거운 방문을 열고, 정규방송이 끝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TV를 끄고, 그녀의 방에 이불을 정돈한뒤,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
울었는지 눈가는 촉촉했고 안 좋은 꿈을 꾸는 듯 이마에 힘을 주고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의 작은 주름을 엄지로 살짝 쓸고선 방문을 조금 열어놓고 나왔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이 바보야...'
그는 괜히 속상한 마음에 낮에 빌린 호러물 DVD를 다시 틀어 새벽을 보냈다.

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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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김에 쓰기 시작했는데 다쓰니 술이 다 깬거시...
물론 여성향이다 뭐다해서 그런 류를 좀 접하긴 했지만서도 아무래도 현실로 접목 시키면 전혀 해피하게 안 넘어간다.
부정적인 성격 탓인가, 아무리해도 '간절하지만 꺾이고 마는' 그런것밖에 생각이 안나서 그저 슬프기만함...
그래서 글도 그렇게 넘어가고 말았는데,
슬픈데 비해 상세한 묘사력이 딸려서 그런가, 워낙 대충하는 성격탓인가 후딱후딱 넘어간는 면이 없잖아 많다?(많아../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