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량 10% - 11.12.07.
평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다, 회사다 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드문 어느 하천 가의 잔디밭.
왠 남학생이 누워있다.
비탈져있기도 하거니와 산책로 바로 옆의 키큰 잡초들로 그의 모습은 건너편 외에서 잘 보이지 않았고,
타인과의 문제가 얽히는 걸 극히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은 보고도 쉬쉬하며 지나가곤했다.
여름, 낮1시 34분. 해가 높다.
"....?"
"잘 잤어?"
"아.."
건호는 윤서의 콧구멍을 보면서 깨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낡은 우산 덕에 크게 눈이 부시진 않았다.
"잠깐, 네가 왜 여기있냐.."
건호는 그녀의 무릎위에서 머리를 치울생각은 커녕 몸 어느 한군데도 움직이지 않은채 눈만 굴리며 물었다.
"땡땡이 치고 집에가는 길에 봤지. 자외선 지수가 가장 높을 시간에 상판을 지지고있는 너를"
"으윽"
"대판 누워서 각도 좋은 잔디밭에 썬텐하니 좋니?"
"따끔따끔해"
"뭐하다가 그런데 누워있어"
그녀는 건호의 군데군데 난 상처나 멍을 살짝살짝 눌러본다.
"손치워, 편의점에서.."
"편의점에서?"
"아휴, 됬다. 굴렀어"
"이게, 대놓고.. 질 안 좋은애들하고 되도록이면 엮이지마"
"걔네들이 먼저 시빈걸 어떻게 해"
"에휴, 그냥 아무거나 던져줘버려"
"그럼 우리 누나를 던져버릴까?"
"..."
그녀는 쳐진 눈으로 건호를 바라봤다. 눈 한번 깜빡임 없이.
"너 때문에 누나 성격 버렸어"
"미안"
그녀의 즉답은. 건조했다. 불만도 비꼼도 큰 안타까움도 없었다.
"짜증나"
윤서는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의 마른잎 하나를 떼어주며 건호 머리를 토닥였다.
근래 비가 오지 않아, 하천의 수위는 많이 낮아져있었고, 군데군데 바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얕은 바닥에서라도 낚이는 물고기가 있긴하는지 하천가엔 한 아저씨가 낚시 찌를 드리우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사방은 조용했다.
"강우량 10%를 믿었는데"
"바보네"
"누군가는 바보덕에 우산 아래 누워있지"
건호는 그녀의 다른 곳을 바라보고있는 눈을 한번 올려보고는 우산 너머 하늘을 봤다.
작열하는 해가 눈을 멀게만드는 것 같았다.
"짜증나..."
골목 귀퉁이에서 타학교 학생들이 한 아이를 몰아 밟는걸 보고도 가볍게 무시하고 작은 편의점에 들어간 건호는
집에서 먹을 삼각김밥 몇 개를 집어들었다.
곧이어 편의점으로 쳐들어온 그 패거리들은 뺏은 돈으로 이것저것 물건을 품에 안았다.
과연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긴 한걸까 의심이 들정도로 많이.
건호는 마지막으로 음료캔 하나 더 사고 계산을 했다. 쓸데없는 그런 애들과는 눈조차 마주치기 싫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빨리 뜨려고했다.
그리고 알바생의 "안녕히가세요" 말이 끝나기 전에 도난 경보기가 울렸다.
건호의 가방 귀퉁이 주머니에서 고르지도 않은 콘돔이 하나 박혀있었고, 그 패거리들은 원숭이같이 끽끽대며 웃기 바빴다.
"누나 심부름인가봐?"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장 차이.
패거리중 하나인 그는 건호의 누나를 집착적으로 따라다녔고, 지금은 집착적으로 미워한다.
처음부터 달가워 하지 않았던 건호도 함께 패키지로.
그렇게 그지같은 인연은 윤서와의 만남도 있지만 이런 듣보잡 중학교 동창과의 만남도 있었다.
감이 빠른 알바생은 재빨리 그들을 편의점 밖으로 내몰았고 다른 손님들의 물건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로 시작된 싸움은 솔직히 일방적이었다.
건호에게 막강하게 불리한 싸움이었고, 건호는 오직 그에게만 달라붙어 때리는데 집중하는 바람에 주변에서 발로차든 뭐하든 신경쓸 겨를이 없어 엄청 맞아댔다.
겉보기엔 '개가 한 사람에게 미친듯이 달려들고 주변에선 그 미친개를 패는 듯한 장면'이었다.
건호에게 질린 패거리들이 가자, 지친 몸을 세워 편의점 유리문을 열고 알바생에게 콘돔을 던졌고 길건너의 하천 풀밭에 미끄러지듯 뻗어누웠다.
다리밑은 걸어가기에 너무 멀었고 딱히 사람 눈을 피할 곳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지쳤다.
"여고생 무릎베개 귀한거야. 너무 짜증마"
"공부도 안하는게, 여고생 좋아하시네"
"하하"
건호는 웃는 그녀를 보곤 눈을 지그시 감았다.
1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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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햇빛을 가리는 우산아래 무릎베개'를 쓰고싶었다.
건호 중학교 동창은 학창시절, 갱지에 끄적인 설정이었는데 '아아 이런 설정도 있었지'하고..
이틈에 넣으면 조금 부드럽게 진행될까 싶어 껴봄(딱히 그릴 트러블도 생각안나고)
너무 막 끊었나, 묘하고 어설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