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육포 - 11.06.15.
건호는 자신보다 3살 연상인 그녀의 첫인상은 '엉망'. 건들고 싶지 않다는 생각 밖에 안 했었다.
"안녕?"
드라마나 만화에서 나올법한, '안녕'이라는 대사를 가볍게 던진 그녀는 바닥에 앉아 멀뚱이 서있는 그를 바라봤다.
그녀는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교복차림에 속이 빈듯한 후줄근한 가방을 옆에 두고 치마를 입건 안입건 신경안쓰고 마구 앉은 듯한 편한 자세로 느긋히 그의 답을 기다렸다.
대답은 조금 늦었고 조금 짜증이 섞였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음, 그냥 집은 싫고 밖은 덥고 1,2층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락하잖아"
엘리베이터 하나를 사이로 두 집이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아파트 9층.
의 비상계단.
하필 왜 9층인가 싶지만 그녀의 눈을 보자 아무 생각 없어 보였다.
"뭐하는 거냐고 물었는데"
그는 워낙에 인상도 드럽고 실제 성격도 좀 별로라 좀 쉰듯 하지만 억양없는 목소리가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갈곳이 없어서 잠시 쉬고있어. 육포 좀 먹을래?"
하고 그녀는 안도 조금 더러운 듯한 가방 안을 뒤적거리더니 육포를 하나 꺼내 건내준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건 그다지.."
"내가 주는건 먹어도돼" 하고 자기가 조금 깨물어 먹고 그걸 그대로 다시 건낸다.
건호는 그걸 받아선 어쩔수없이 들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한텐 이르지말아줘~"하고 닫히는 문사이로 목소리가 세어들어왔다.
"어른들은 없"하고 대답이 끝나기전에 현관문은 쾅하고 닫혔다.
그녀를 신경 안쓰고 소파에 엎어져 자고있는데 문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아저씨하고 그녀.
아마 경비아저씨는 처음엔 전단지 돌리는 알바생이라 생각했을테고 그녀는 그에 대항.
전단지가 없고 알 수없는 육포 포장지와 불량한 자세를 보아 대충 가출한 학생으로 생각했을테고 그녀는 그에 전보단 약하게 대항.
괜히 일 커져서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끝내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건호는 귀찮은 듯 현관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만 내밀어 경비아저씨한테 말했다.
"아저씨, 쟤 내 친군데요"
"왜 밖에내놨어?"
"집이 더러워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어요"
"정말이냐?"
그녀는 묻는 경비아저씨에게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떠서 씨익 웃어보였다.
"뭐.. 맞아요"
하고 탐탁잖은 눈으로 건호가 대답했다.
조금 의심스러운 눈을 끝까지 거두지 못하더니 미심쩍은 뒷모습을 보이며
지금까지 뜯어낸 전단지를 튼실한 옆구리에 끼고 아랫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와- 살았다"
"괜히 시끄럽게 굴지 말고 좀 가지?"
"하하, 좀 시끄러웠어? 내가 좀 상황이 안좋다 보니 보기에도 수상해보였나봐"
"수상하지, 안 수상해보이겠냐"
"ㅎㅎ 고마운 의미로 육포조각 하나 더주지~"
"육포.. 안좋아하는데"
"어린애네~"
"누가 어린.."
"말 한마디도 안지는거 보니 어린애 맞지 뭐~"
"야, 너.."
"너라니, 나 너보다 훨씬 나이많거든?"
"그게 자랑이냐"
"흐흐, 자랑은 아니지" 하고 웃는 그녀는 조금 기가 죽은 듯했다. 복학생인 그녀는 다른 또래 애들보다 한 학년 낮다.
1년간 어딘가 갔었다는 소문이 있긴 하지만 어른들도 별 얘기를 안하고 본인도 입을 다물 뿐이었다.
"음, 이제 슬슬 떠야겠다. 날라리, 안녕"
"누가 날라리라는거야"
"너ㅋ 머리색이 날라리잖아. 삐죽삐죽, 색도 그렇고"
"칫 지는 가출이나 하는 주제에"
그녀는 별 대답을 못하고 그냥 씁쓸히 웃고 말았다.
"언젠가 너도 가출할 날이 올거다~ㅋㅋ 그 때 이 누님을 찾아"
하고 주머니속 껌싸는 은박지를 손 위에 놓고 삐뚤빼뚤 지저분한 글씨로, 어떤 숫자는 구멍까지 뚫어가며,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공짜 볼펜으로 자기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다른 머물곳 찾아봐야겠다. 다시 안녕-"
대충 가방을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엘리베이터에 오른 그녀에게 건호는 별 다른 말을 못하고 그냥 손만 대충 흔들어 주었다.
"뭐야.."
그 번호가 적힌 종이는 서랍속에 한동안 박혀있었는데 얼마 안가 빛을 보게 되었고,
버리지도 않고 책장 위에 대충 놓은 육포는 말라 비틀어져 내려앉는 먼지를 고스란히 맞아 미이라가 되고 있었다.
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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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기간엔 끄적이고싶지. 어제 쓴걸 마무리.
'안녕'이라는 주제로 썼는데 끝을보니 '육포'가 되었다. '안녕'은 담에 쓰지 뭐.
건호 여친은 아직도 이름 못정함. 진정한 날라리는 요기잉네?
이 커플에 대해 말하자면 서로 성격이 강하다보니 조용한 커플은 아닐것 같고, 좀 엄하고 거칠것 같다. 심한 장난같음.
이것저것 건호 스토리로 쓰고싶은건 많은데 설정이 부실공사라..시간나면 좀 매달려봐야겠다.